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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도 외면한 침묵의 비극" 청각장애 아동 성폭력, 두 대륙에 걸친 조직적 은폐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신학자로 활동하는 피규로아 박사에 따르면 그녀는 리마 페루에서 신부에게 당했던 성범죄 피해자다. "가난한 마을 출신이었던 나는 청소년 때 가톨릭교 사도 생활단에 들어갔고, 15살 때 성직자에게 영적 지도를 받으라고 지시받았다." "당시 난 순진하고 성 경험이 아예 없었고, 그는 내 몸 구석구석 더듬었다. 난 그가 옳고 내가 틀렸다고, 내게 악이 씌었다고 잘 못 생각했다. 죄책감이 몰려들었고 혼란스러웠다." "그가 날 성폭행하지는 않았지만, 성범죄를 저지른 것은 분명하다. 내가 성범죄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마흔이 돼서야 인지했다." "내가 신을 대신해 믿었던 사람들 모두 가짜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bbc

 

 

 

아동을 위한 곳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

겉으로는 ‘사랑’과 ‘자비’를 외치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듯 보였던 가톨릭의 청각장애인 학교. 그러나 그 울타리 안에서 수십 년간 벌어진 일은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잔혹한 범죄였다.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에 있는 안토니오 프로볼로 청각장애인 학교.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곳의 졸업생 67명은 사제들과 수도사들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과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고 고발했다. 심지어 일부 피해자들은 자신들을 학대한 성직자 24명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제출했다.

그런데도 교회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했다.


범인은 해외로 ‘보호 이동’

피해자들이 공개 고발에 나선 건 2009년. 이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된 인물은 니콜라 코라디 신부였다. 문제는, 이 인물이 이미 1970년대부터 남미 아르헨티나로 옮겨 또 다른 청각장애 아동들과 함께 사역 중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 이미 교회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경고 없이 그는 아르헨티나 멘도사의 자매학교에서 비슷한 범죄를 계속할 수 있었다. 결국 2016년 경찰이 급습해 그와 공범인 호라시오 코르바초 신부를 체포하면서, 수십 년간 이어진 성범죄가 드러났다.

2019년, 아르헨티나 법원은 코라디에게 징역 42년, 코르바초에게 4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피해자의 외침은 묵살되고, 교회는 침묵

이 사건에서 가장 충격적인 건, 교황청과 교회 당국의 태도였다.

피해자들은 이미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공동 서한을 보냈다. 아르헨티나에서 여전히 활동 중인 가해자들의 명단을 알렸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촉구했다.

하지만 교황청은 2년 동안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2016년에야 교황의 측근을 통해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피해를 입고 있었고, 멘도사 교구는 코라디의 과거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바티칸은 위험인물에 대한 정보 공유 체계도 없고, 감시도 없었으며, 책임자도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셈이다.


결국 교회가 아닌 경찰이 문제를 해결하다

이 모든 과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은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교회는 그들을 비참하게 저버렸고, 교황은 외면했으며, 결국 경찰이 대응했다.”

교회가 내부 경고와 고발을 묵살했기 때문에, 수십 년간 성직자들은 안전한 범죄 공간에서 피해자들을 유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범죄를 멈춘 것은 교회가 아니라, 결국 세속의 경찰과 법원이었다.

교회가 신뢰와 도덕을 상징한다는 말은 이제 공허하게 들린다. 조직의 명성과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아동의 고통을 외면하는 집단, 그게 지금까지 드러난 모습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침묵은 무엇을 말하는가

교황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자와 약자를 위한 교황”이라는 이미지를 세계적으로 구축해왔다. 그러나 정작 가장 약한 자, 청각장애 아동들이 수십 년간 성폭력을 당하는 동안 그는 아무런 공식 사과나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바티칸은 코라디의 체포 후에도 “논평을 사양한다”고만 했을 뿐이다. 피해자와 그 가족, 그리고 신자들에게 교황의 침묵은 또 다른 폭력으로 다가왔다.


남은 질문: 교회는 바뀔 수 있는가?

이 사건은 단순한 과거의 비극이 아니다. 지금도 전 세계 여러 곳에서, 가톨릭 교회 내부 고발자들은 묵살당하거나 처벌당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교황청은 철저히 책임을 회피하고 침묵한다.

청각장애 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조차 조직적으로 묵살되었다면, 다른 사안에선 어떨까? 교회가 스스로 자정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 보인다.


🕯️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싸움이 없었다면, 이 진실은 아직도 어둠 속에 묻혀 있었을 것이다.